“14년 전에 아들을 먼저 떠나보냈어요. 9개월을 키우고 ‘엄마’라는 말을 막 했을 무렵이었어요. 낮잠을 재우고 저희 부부는 거실에서 신나게 놀았는데, 애가 일어날 시간이 지나도록 깨지를 않아서 방에 들어가 보니 죽어 있었어요.”
한 어머니가 14년 전에 죽은 자식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린 자식을 보낸 부모로서 마음 아프긴 하겠지만, 14년이 흘렀는데 아이 생각을 하면서 또 흐느껴 웁니다. 지금 아이가 죽은 것도 아닌데 14년 전에 죽은 그 아이 생각을 하면서 ‘사로잡힘’이라는 정신 현상이 일어나 것입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을 비디오로 보는 것처럼 떠올리면서 마치 지금 일어나는 일인 것처럼 생각하면, 뇌나 마음에 아이가 죽었을 때와 똑같은 작용이 일어납니다. 눈물도 나고 목도 메이고 마음이 가라앉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 다른 생각, 다른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 사로잡힘에서 벗어납니다. 그러다 다시 죽은 아이를 생각하고 사로잡히면 또 슬픔이 일어납니다.
어떤 부인이 남편이 죽어서 몹시 괴로워하고 있다면, 남편이 죽었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 아니라 남편이 죽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서 괴로운 겁니다.
남편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도 맛있는 음식을 보고 순간적으로 ‘맛있겠다’는 생각을 하는 동안에는 괴롭지 않습니다. 그 순간에는 남편이 죽었다는 생각을 놓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다시 남편 생각을 하면 괴로워집니다. 죽음이 괴로움을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죽었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 괴로움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나 그걸 놓으면 금세 밝아집니다.
14년 동안 사별의 슬픔을 겪고 있는 어머니 역시 죽음의 충격에 사로잡혀서 놓아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부모는 아이가 죽을 때 거실에서 놀고 있었다는 것 때문에 지금가지 자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자는 줄 알았는데 죽었다면 병명을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심장마비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데 어려서 죽었으나 아이도 덜 고생하고 부모도 덜 고생하지 않았겠어요. 초등학교나 중학교쯤 다니다 죽었으면 슬픔이 지금보다 더 클 수도 있습니다.
부모가 무슨 잘못을 해서 죽인것도 아니고 이불을 잘못 덮어 놔 질식해서 죽은것도 아니잖아요. 그냥 자연사일 뿐인데, 아이가 죽을 때 곁에 없었다는 이유로 죄책감을 가질 이유은 없습니다.
‘우리와 인연이 다해서 갔구나’ 생각하고 ‘다음 생에는 불편한 몸 받지 말고 건강한 몸 받아서 행복하게 살거라’ 이렇게 기도하고 집착을 놓아버려야 합니다.